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펑크 록 (문단 편집) === 프로토 펑크 === 1960년대 후반(거의 1969~1972년), [[디트로이트]]에서는 새로운 음악이 등장한다. 도저히 당시로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을 수준의 과격한 음악과 무대 매너로 뭇 사람들에게 그냥 '미친 사람' 취급을 받는 뮤지션들이 등장한 것이다. 바로 펑크록의 과격함에 직접적인 씨앗을 제공한 [[MC5]]다. 이들은 당시로서는 도저히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수준의 음량과 폭력적인 무대매너로 악명높은 밴드가 된다. 이들은 또한 [[68혁명]]으로 요약되는 시대의 밴드 답게 당시 학생 운동과 [[흑표당]], [[마르크스주의]] 등에 영향을 받은 굉장히 정치적인 밴드이기도 했으며, 때문에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근처에서 벌어진 생명의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. 이러한 디트로이트의 분위기에 따라, [[더 도어즈]]의 영향을 받은 한 젊은이가 풍운아처럼 나타난다. 바로 [[이기 팝]]인데, 당시 연주보다는 [[기행]]을 일삼는 젊은이었다. 이기 팝은 [[더 스투지스]]라는 자신의 밴드를 만들어서 공연을 하는데, 무대위에서 마이크로 자신의 머리를 쳐서 피가 흐르게 [[자해]]를 한다거나, [[BDSM]]적인 악세서리를 차고 공연한다거나, 관중에게 뛰어든다거나, 관객들에게 [[땅콩버터]]를 뿌리는 등 '''해괴한''' 퍼포먼스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.[* 이기 팝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아래에 따로 이야기하게 되는 [[벨벳 언더그라운드]]가 있다. 이기 팝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[[루 리드]]를 보고, "저 사람 노래 되게 이상하게 하는데 가수하네? 그럼 나도 해도 되겠네?"라고 생각했다고 한다...][[http://www.youtube.com/watch?v=scfxldv2a6Y|충격과 공포의 1970년 신시내티 페스티벌 공연영상]] 1970년, 19살이였던 보스턴의 조나단 리치맨이 등장해 [[벨벳 언더그라운드]] 팬을 자청하고 나서며 밴드를 하나 결성했다. 그 밴드는 [[모던 러버스]]였다. 모던 러버스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멤버였던 [[존 케일]]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첫 앨범을 만들었지만, 계약 문제로 이래저래 앨범 발매는 지체되었고 결국 앨범 발매를 보지도 못하고 해산했다. 하지만 1976년 뒤늦게 발매된 모던 러버스의 첫 앨범 [[The Modern Lovers]]는 꺼벙한 리치맨의 보컬과 극히 단순한 코드로 이뤄진 로큰롤로 당시 큰 파장을 일으켰다. 그리고 리치맨을 비롯한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가면서 뉴욕 펑크 씬에 스며들었다. 드러머였던 데이비드 로빈슨은 [[카스(밴드)|카스]]로 들어갔고 키보디스트 제리 해리슨은 [[토킹 헤즈]] 제4의 멤버가 되면서 그들의 전성기를 함께 했다. 이들은 현재에 [[프로토 펑크]]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, 그 이유는 후대에 나온 펑크 록 바로 이전에 존재했기 때문이다. 현재는 시간상으로 펑크 바로 직전의 거칠고 단순한 록 음악을 프로토 펑크라고 부르기도 하고,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잘 살린 밴드들을 프로토 펑크라 부르기도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